정리하면 이렇다.
- 인터넷에서 익명성은 기본적이며, 추구해야할 가치이다.
-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익명성은 보호되어야 할 가치이다.
- 나아가 인간의 본성은 익명성을 추구한다.
인터넷, 사회적, 인간 본성의 세 가지 범위로 나누어 익명성을 따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사람들의 주장은 그 셋에 대해 모두 익명성이 기본이고 심지어 추구해야 할 가치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다르다. 셋 모두에 대해 익명성은 기본적이 아니라 예외적이다.
인터넷의 관점에서 본 익명성
사람들은 인터넷에 대한 오해가 많다. 워낙 신기술이기도 하고 다양한 기술의 복합체라서 기본 원리를 이해하기 힘들기도 하고, 또한 빠르게 변화하다 보니 규칙 같은 것들이 제대로 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인터넷은 공짜, 정보는 공유가 기본, 익명성이 기본이라던지 하는 얘기들은 모두 이런 연유로 쌓인 오해인 것이다.
하지만 기술 내부를 들여다 보면 그 근본 원리를 알아낼 수 있는 법. 간략히 설명해 보도록 하겠다.
인터넷을 좀 안다하는 사람은 "아이피(IP) 추적"이란 것을 들어봤을 것이다. 맘에 안드는 글을 쓴 사람의 아이피 주소를 인터넷 툴을 이용해서 조회해서 글쓴이의 컴퓨터가 미국 뉴욕에 위치한다던지, 용인의 케이블 업체에 연결되어있다던지.. 하는 것 등을 뒷조사하는 것이다
. 이 정도는 개인이 하는 수준이고, 경찰이 개입되면 서울 무슨 동 모 피씨방 어느 컴퓨터에서 접속했다 정도의 자세한 추적이 가능하다.
어떻게 이런 조사가 가능한 걸까? 이것은 애초에 인터넷이 익명성을 전제로 개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반증한다.
IP 주소의 관점: 인터넷에서 데이터가 오가는 것은 마치 우편물을 보내고 받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신뢰성 있는 데이터 송수신을 위해 내용증명우편과 같이 항상 받았다는 답장이 필요하다
. 따라서 데이터를 보내기만 한다 해도 자신의 IP 주소는 정확히 써야 제대로 전송이 되는 것이다. 즉 인터넷에 참여하는 사람은 항상 자신의 컴퓨터의 정확한 주소를 공개한 채로 참여하는 것이다.
서버의 관점: 처음 인터넷이 활용될 무렵에는 컴퓨터 하나 당 한 개의 IP 주소가 주어졌다. 따라서 주소만 알면 바로 어느 회사(혹은 학교)의 무슨 컴퓨터인지 알 수 있었다. 다만 그 당시의 컴퓨터는 개인 컴퓨터가 아니라 서버 컴퓨터였으므로, 컴퓨터 내에는 여러 개의 계정(사용자)이 존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계정은 회사의 엄격한 관리 하에 있었으므로 계정을 개설할 때는 당연히 각종 상세한 개인 정보(및 소속)가 필요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또한 계정을 바꾸거나 여러 개의 서버에 계정을 가지는 것이 쉽지 않았으므로 amugae@hoisa.com 따위의 계정은 거의 한 사람의 단일 ID(identity)를 표현한다고 볼 수 있었다.
이렇듯, 마치 조선시대에 "산 아랫동네 큰 소나무 앞 집 둘째"라고 하면 익명성은 사라지고 단일 정체성이 부여되는 것처럼 인터넷 초창기엔 계정과 서버명(혹은 IP 주소)를 통해 물리적으로 실존하는 한 인물을 지목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들도 그것이 익명성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서버에 접속해서 글을 쓰는 행위 뿐 아니라 글을 읽는 행위, 즉 읽은 페이지와 읽은 시각 등까지 서버는 모두 기록한다. 사생활의 침해 아니냐고? 인터넷엔 원래 익명성이란 존재하지 않았다니까.
익명성이 아닌 가명성
그렇다면 현재 가질 수 있는 (듯 해 보이는) 인터넷의 익명성은 어디서 유래된 걸까? 처음부터 익명성(anonymity)은 없고 가명성(virtual identity)만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오해한 것 뿐이다. 또한 여기서 가명이란 자신을 완전히 숨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실 사용자와 거의 1:1로 연결되는, 실제와 다름없는(virtual) 실명성(identity)이었던 것이다. 즉 학교랑 학번 걸고 글을 게시하거나 회사랑 사번 걸고 메일 보내는 것 쯤으로 생각하면 되겠다.
정보화 사회가 발전하면서 가명성이 익명성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은 산업화를 통해 도시 속에서 개인의 정체성이 군중 속에서의 익명성으로 희석되는 과정과 다를 바 없다. 인간 심리의 입장에서 익명성은 원칙이나 권리 같은 것이 아니라 본성의 파괴를 일으키는 도시 사회의 족쇄이다.
즉, 애초에 인터넷에 부여된 축복된 익명성 따위는 없었고, 규모의 성장과 함께 여러 단계의 가상화를 설치하치면서 정체성(identity)을 일어버리고 얻은 익명성이라는 부산물을 사람들이 즐기고 싶어할 뿐이다.
그리고 실제로는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완벽한 익명성이 아니라 여러 개의 분열된 가명성을 즐긴다 (즉 몇 개의 다른 아이디들을 사용한다는 뜻).
행정적인 관점, 혹은 관리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익명성이란 제거할 수록 좋은 것이다. 책임과 의무를 확인하고 제어하기 위해 실명제가 필수 사항인 경우가 많다.
일단 이해하기 쉬운 경제의 관점에서, 금융실명제가 크게 환영을 받은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은행의 계좌들을 익명으로 두지 않고 실소유주와 대응시킴으로써 세금 탈루, 불법 자금 은닉 등의 법률 위반을 방지하고 혹은 그에 관한 수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자영업자들의 소득 규모를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 신용카드 사용을 권장한 것도 그러한 필요성에 의해서이다 (사실 신용카드보단 직불카드가 더 나았겠지만). 기업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상대방의 신원을 확인하지 않은 채로 대출해 주는 은행도 없고 익명으로 사원을 채용하는 회사도 없다.
정치의 관점에서 보자면.. 투표는 무기명으로 하지만 정치인이 익명으로 출마하는 경우는 없다. 출마자는 모든 재산과 그간의 행적이 모두 공개된다. 그리고 적어도 유권자가 투표를 했는가 안했는가 하는 것은 법이 정한 1인 1투표를 지키기 위해 기록에 남긴다. 또한 정치가가 익명으로 활동하는 경우도 없다. 의회의 경우 몇몇 법안은 무기명 투표를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기명 투표이고, 적어도 발의자는 기명으로 남는다. 시에서 하는 활동은 결국 시장의 결재를 거치므로 시장의 이름을 걸고 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부동산도 실명제이고 주거지, 핸드폰, 자동차 등등 모두 실명 인증이 되지 않으면 등록이 되지 않는 것들이다.
인간 본성의 관점에서 본 익명성
"사회적인 인간"이라는 표현을 쓸 때의 사회는 관료행정적인 테두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관계라는 관점에서 익명성을 보기 위해서는 행정적인 부분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적인 부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경우에 대해 답변은 간단하다. 인간의 본성은 일관된 정체성을 추구하는데, 익명성은 정체성을 망가뜨린다. 사람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이해받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이러한 욕구는 익명성 하에서는 얻어낼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원치 않는) 익명성이 정체성을 잠식하는 경우 인간은 자유를 누리기보다 오히려 각종 정신증/우울증에 시달리게 된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인터넷 사회에서 사람들은 완벽한 익명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분열된 가명성을 추구하는데, 사실 이 분열된 가명성 역시 정도가 심해지면 축복이라기보다 일종의 정신증의 발현에 가까워진다.
블로그 작명에 대해 얘기하면서 살짝 소개한 적이 있지만, 가상 사회 뿐 아니라 실제 사회에서조차 현대인은 자신이 속한 각각의 사회에서 서로 다른 인격을 가지고 행동하게 되는 약한 형태의 다중인격성 장애를 겪는다.
민노씨님은 "길을 갈 때 주민증 까고 다니는 사람 없는 것과 같은 격"이라고 했는데, 오히려 길을 가면서 아는 사람 하나도 못 만나는 일이 상식적인 것이 인류 역사상 아주 예외적인 상황으로서, 이는 얼마 되지 않았고, 사회/심리학자들은 이로 인한 긍정적 효과보다는 부정적 효과에 크게 주목하고 있다.
익명성이 필요하게 되는 상황은 무엇
사람들은 사실 항상 익명성이 자신을 대신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고 가끔씩만 원할 뿐이다. 그러한 특별한 경우에 익명성을 요구하면서 사람들은 자신을 숨기고 싶어하는데, 이는 결국 자신이 한 행동으로 인해 피해를 입고 싶지 않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크게 잘라 두 가지 상황이 있을 수 있는데, 하나는 떳떳치 못한 일을 하려할 때, 또 하나는 떳떳하긴 하지만 피해를 감수하고 싶지는 않은 것. 첫번째로는 거짓 선동(루머; 악플)을 하는 상황을 생각해 볼 수 있을 테고, 두번째에 대해서는 내부 고발을 들 수 있을 게다. 떳떳치 못한 일을 하기 위해서 익명성을 활용하려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고려할 가치가 없고.. 두번째 상황이 좀 고려할 만한 가치가 있겠다.
표현의 자유를 위해 필요한 전제 조건은 익명성이 아니라, 추후 보복이 없는 것이다. 사실 보복을 금지하는 원리는 법률 상으로도 (혹은 불문율로) 여러 곳에 표현되어 있는데, 법원이나 경찰의 증인 보호 및 언론의 취재원 보호 등이 그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본 법률이 정하는 바 이외에도 익명성이 절실히 요구되는 사회라면 이는 자유로운 사회가 아니라 심한 억압이 존재하는 사회라고 볼 수 있겠다. 익명성의 일반화를 요구하고 나서는 사회의 억압에 대해 가슴아파할 일이지 익명성을 축복으로 생각하고 즐길 일이 아니다. 익명성은 앞서 말했듯이 그 자체로 여러 가지 폐해를 동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익명의 토론이라는 게 가치있게 진행되는 것을 난 본 적이 없다. 통신 시절의 게시판으로부터 신문사 홈피의 코멘트 란에 이르기까지 완전 익명 게시판은 그저 음담패설과 욕설, 혹은 한탄의 장일 뿐이었다. 최소한 자기가 아끼는 가상 아이디라도 걸어야 사람들은 욕설을 배제하고 규칙을 준수할 줄 알게 된다. 각종 게시판에서도 흔히 보는 일이지만,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고, 100분이 점잖게 토론을 하고 있어봐야 한 놈이 뛰어들어 익명 걸고 물 흐려 놓으면, 한 명은 점잖게 꾸짖고 한 명은 그대로 실명 걸고 욕하고 두 명 정도는 익명으로 바꾸어 욕하고 나머지는 떠나 간다. 정상적인 토론을 위해서는 익명성이 아니라 오히려 회원제 가입과 글쓴이의 ID 노출이 더 도움이 된다.
맺는 말
사실 익명성을 주장하는 사람들 중 대다수가 이미 익명성의 그늘 하에 있지 않다. 블로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가상이긴 해도 아이디를 가지고 유지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익명성에 대한 논의 자체가 익명 게시판에서 이뤄진다면 그저 욕설만 난무했으리라 짐작한다.
실명제를 반대하기 위해서는 검열의 부당한 측면을 강조해야지, 익명성을 기본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인 것으로 떠받드는 것은 잘못 짚은 것이라 생각한다.
덧붙여, 실명제 법안에 대해서는 그저 헛수고라고 생각한다. 성명+주민번호가 개당 100원에 팔리는 나라에서 실명제는 무슨 실명제? 더불어 정치적으로는 감점. 도대체 왜 한 거야?
---
밑에는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