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멀리 타국에 나와 있는 터라 스케줄이 안 맞아 가지도 못하고 그냥 한국의 가족/친척들과 통화만 하는 수 밖에 없었다.
할머니는 알고 있기로 19년생이시니 아흔을 사셨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호상인 게다. 하지만 그건 가족들이 스스로 위로하는 말일 뿐이고 사람이 죽는 건 스무살이나 아흔살이나 똑같은 일이다.
어머니도 통화하시면서 호상이라시지만 결국 우셨다. 나도 전화 너머로 함께 우는 수밖에 없었다.
가장 가까운 가족이 더이상 볼 수도 이야기할 수도 없게 된다는 것은 나이를 떠나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중학교 때부터 계속 외가에서 멀리서 지냈기에 나에게 할머니는 주로 어릴 적의 추억이 전부이지만, 어머니에게는 역시 당신의 어머니이신데다 멀리 떨어져서 자주 못 뵈는 것 때문에 오히려 아쉬움이 더했을 것이다.
우리 외가는 흔히 말하는 (하지만 이제는 '아직도 있니' 할 법한) 이산 가족이다. 서울에 살았는데 난리통에 가족이 흩어져 외할머니와 함께 삼남매만 남쪽으로 도망칠 수 있었고 외할아버지 및 나머지 형제들은 북으로 끌려간 것으로 추정된다. 그 때문에 외할머니는 평생을 힘들게 자식들 키우시느라 고생하셨고 항상 외할아버지와 다른 가족들을 그리워하셨다. 자식들은 어릴 때라 기억도 잘 나지 않을 때고 사실상 가족 내에서 외할머니 혼자만이 다른 가족들을 기억하고 안타까워하는 존재였던 셈이다.
가족이란 사실 그런 거지. 항상 같이 있을 땐 소중한 줄 모르다가 떨어져 지내면서도 연락도 가끔이나 하면서도 그리 미안한 줄은 모르겠는데 막상 다시는 못 보게 된다면 그제서야 후회되는.
추석 때 외가에 전화드리면서 외할머니와는 통화도 못 해봤는데 전화라도 한 통화 할 걸 하는 생각이 불쑥 불쑥 든다.
어머니에게 통화나 자주 드려야겠다.
장례 치르는 것도 고생이고 상심하셔서 건강 해치시지나 않을까 걱정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