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및 이해와 오해

생각 | 2008/10/05 23:54 | monomask
나는 근본적으로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이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또한 한편으로 인간의 사고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나로선, 
(위 추정은 여러 자료 및 스스로의 오랜 관찰에 의거하는바, 깊은 관심 없이는 내릴 수 없었겠지)
사고의 전달 노력인 대화와 성공적인 전달을 의미하는 이해 및 실패한 전달을 의미하는 오해 등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 당연하다.

상호이해불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 대화에 악영향을 미치기보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는데,
즉, 이해라는 것이 근본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이해를 포기하는 것보다는,
그러한 가정을 인정함으로서 오해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어차피 모든 신호 전달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잡음(noise)이 끼기 마련이고,
그렇다면 잡음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아닌 쪽보다 신호 전달에 훨씬 도움이 되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문제는, 대화에서 오해가 생기는 원인이 비단 회선의 문제1 가 아니라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서로 언어 및 문맥이 다르다는 것이다. 흔히 '남자와 여자는 언어가 다르다'라고 표현하는데, 남자와 여자 사이 뿐 아니라 (물론 동일 언어권에서의) 같은 성별의 인간끼리라도 모두 언어가 다르다.

초등학생과 대학 노교수가 처음 만나서 어떤 것에 대해 대화를 한다고 치자. 많은 경우에 대화가 제대로 성립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아는 것이 많고 적음의 차이가 아니다. 서로 아는 것이 다른 것이다. 초등학생의 관심사는 저녁식사 시간대의 만화 영화와 학교 숙제, 친구들과의 놀이 이런 것일테고 (나도 솔직히 요새 초등학생의 관심사가 뭔지 모르겠다. 이건 단지 내 경험상의 추측이다), 대학 교수의 관심사는 강의와 연구, 은퇴계획, 자녀의 결혼 따위겠지.

서로 다르게 자라온 사람들은 서로 다른 지식을 습득했을 테고 서로 다른 가정 환경을 가졌을 테고 (따라서 약간씩 다른 습관과 문화를 가졌을 테고), 또한 모든 사람은 항상 서로 다른 사고를 하며 성장하기 때문에 각자의 머리속에 구성되어있는 사고체계는 서로 매우 다르다. 즉, 무엇을 아는가와 어떻게 아는가가 각자 다르다.

영어 공부 비법에서 흔히 나오는 '아는만큼 들린다' 혹은 고사성어를 풀어 인용한 '아는만큼 보인다2 '라는 문구를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이를 대화에 적용해보면? '아는만큼 이해한다.' 

자.. 조금 충격적이겠지만 묶어서 해석해 보자. 인간은 '이미 머릿속에 있는 것을 보고, 이미 머릿속에 있는 것을 듣고, 이미 머릿속에 있는 것을 이해할 뿐'이다. 혹은 이런 표현으로 바꿀 수도 있겠다. 인간은 '보려는 것을 보고, 들으려는 것을 듣고, 자기 맘대로 이해한다.' 즉, 인간이 자신의 지경(知境)을 넓히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대체로 아는 것을 활용하면서 아주 약간씩 약간씩 넓힐 수 있을 뿐이다. 그것도 크나큰 노력을 들일 때에나. 그러한 크나큰 노력은 성적이 매겨지는 시험 때에나 발휘되지 눈앞에 보이는 보상이 없는 일상 생활 속에서는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더구나 학교의 수업이란 것은 자신이 모르는 것, 오해한 것을 효율적으로 밝혀낼 수 있도록 계획이 잘 짜여있지만, 일상 생활에서의 대화라는 것은 흔히 자신이 무얼 모르는지도 모르는채로 흘러가게 마련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서로 오해를 쌓으며 (그리고도 서로 이해한다고 한번 더 오해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대화를 거듭한다해도 서로 각자의 사고체계를 굳건히 할 뿐이다.

이러한 상황의 타개책은 없는 걸까? 전통적인 경구가 바로 그 해답이 될 수 밖에 없다.
'마음을 열고 들으라'
자신이 아는 것은 모두 배제한 채로 대화에 임하는 것이다. 서로가 전적으로 다른 존재임을 인정하라. 자신의 사고체계는 상대방과 전혀 다를 것임을 인식하고 자신이 이해한 것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믿지 않는 것이다. 대화 중에 기분이 상했다면 그것은 자신이 오해한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묻어두지 말고 평온한 마음으로 즉시 확인하라. 설사 그것이 오해가 아닐지라도, 대부분의 경우 사소한 일로 기분이 상하는 것은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것 때문인 경우가 많다.

'상대방의 측에서 생각하라'
일단 자신이 하는 말도 거의 대부분 상대방이 오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가정하라. 그렇다면 표현 하나라도 신중하게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항상 신중하게만 대화하는 것은 물론 피곤해서 견디지 못할 것이다. 이 조언은 무얼 먹으러 갈까를 결정하는 가벼운 대화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적어도 약간은 진지한 얘기를 하는 경우를 상정한다)

'스스로를 살피라; 지피지기 백전불태'
대화라는 것은 사고의 전달일진대, 간혹 스스로도 생각을 정리하지 못하여 대화를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무엇을 알고 모르며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일에는 어떤 식으로 반응하는지 등을 평소에 알아두는 것이 중요하다.

나도 스스로 대화를 잘하는 편이라고 평하기는 어렵겠다만..
적어도 노력하는 중이라고 말할 수는 있겠다. 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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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회선이란 일반적인 신호전달에서는 전선, 혹은 무선의 경우 주파수가 되겠지만, 대화의 경우에는 발음, 발성, 억양 등을, 회선의 문제란 딴생각 등을 은유한 것이 되겠다. [본문으로]
  2.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에 인용된 '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 看則畜之而非徒畜也(정조 때의 문인 유한준;兪漢雋,1732-1811)' [본문으로]
  1. feveriot 2008/10/20 09:48 답글수정삭제

    안녕하세요? 잘 봤습니다. 공감가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심리학을 공부하지만 저 역시 타인을 이해하는데는 꽤나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심리학을 통해 안 것은 어떻게 오해를 줄일 것인가하는 방법을 알았다고 해야겠네요. 그렇기 때문에 더 노력해야한다는 것 등.: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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