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시류에 편승하는 글 하나 추가요)
내일이 한글날이니 오늘은 한글 및 한국어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적어도 글을 쓸 때는) 삐딱한 본인의 특성 상 한글/한국어에 대한 오해를 위주로 얘기를 풀어 보자.
일단 한글 얘기를 하기로 했으니 한글의 우수성을 논하지 않고서야 시작을 할 수 없겠지.
한글은 다들 알다시피 세종대왕이 1443년에 창제하였으며 1446년에 훈민정음이라는 책을 통해 출판되었다 (출처: 위키피디아). 닿소리(자음) 17개와 홀소리(모음) 11개로 구성되어 조합형 표음문자로 만들어졌다. 이 '자모조합형'이라는 특성이 한국어와는 딱 맞아서 한국어에서 사용되는 음절들을 다 표현할 수 있다. 또한 배워야 하는 기본 자모가 적고 조합법이 정해져 있어 누구라도 손쉽게 배울 수 있다.
자 이제 흔히들 갖는 오해를 살펴보자.
오해1. 한글은 모든 말소리를 표현할 수 있다.
가장 흔히 갖는 오해인데, 한글은 조선 백성을 위해 제작된 것이므로 당연히 우리나라말(당시 조선어)를 잘 표현하게 만든 것이지 모든 말을 고려한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영어의 th, f, v 발음 등은 표현할 수 없고 몇몇 모음도 그러하며, 모음없이 소리나는 자음도 제대로 표기하기 어렵다 (cross는 본래 1음절이지만 '크로스'는 3음절). 또한 초기 한글은 훨씬 복잡하게 쓰는 것이 가능하였으므로 많은 종류의 글자를 표현할 수 있었으나, 현재 한글쓰기법은 초+중+종 3단계의 매우 제한된 모아쓰기 형식으로 고착되었고 자모수도 줄어서 총 11,172가지의 글자만 적을 수 있다.
오해2. 한글과 한국어의 혼동
흔히 많은 사람들이 한글과 한국어를 혼동해서 쓴다. 한글은 글자 표기법이고 한국어는 언어이다. 이를 혼동해서 쓰기 때문에 따라서 파생되는 오해가 많은데,
오해2-1. 한국어는 배우기 쉽고 우수한 언어다
절대 그렇지 않다. 배우기 쉬운 것은 한글이고, 한국어는 교착어의 특성상 어미 활용이 의미를 변화시키기 때문에, 비교적 배우기 어려운 언어에 속한다. 그리고 웬만큼 문화가 발달된 국가의 언어에 대해서는 우수함과 열등함을 비교하지 않는 것이 맞다.
오해2-2. 한국어 파괴가 곧 한글 파괴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언어 교류가 양적으로 늘어나면서사람들이 많은 종류의 신조어를 만들어내는데, 그중에서 몇몇은 '우리말 파괴' 혹은 나아가 '한글 파괴'로 불린다. 엄친아, 넘사벽, ㄳ, ㅋㅋ, 아햏햏, 뷁, 섊 등이 그 대표적인 예라 볼 수 있는데, 이중에서 몇개는 한국어/한글의 단순한 혼동에서 기인한 것이므로 한글 파괴와는 상관이 없다. 문제는 원래 우리가 흔히 사용하지 않던 표기들(뒤의 다섯 개)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한글을 잘 활용하는 예이지 한글을 파괴하는 예가 아니다. 한글의 표현력이 매우 강함을 직접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물론 앞에서 든 모든 예가 우리말이 변질되고 있다는 신호이긴 한데, 그걸 '변질'로 볼 것인지 '변화'로 볼 것인지는 다음절에서 다루겠다.
오해2-3. 한글날을 맞아 우리말을 돌아보고 잘 지키자.
흔히들 한글날만 되면 이런 말을 한다. '요새는 외래어도 많이 쓰고 인터넷 신조어도 많이 쓰고 해서 우리말이 많이 변질되었다. 세종대왕 보시기에 부끄럽지 않겠나. 우리말을 잘 다듬자' --> 난 헛소리라고 생각한다.
한글은 글자 표기법이고 한국어는 언어이다. 우리말을 잘 다듬는 것은 우리 언어 문화를 잘 보존하는 것과 관련된 것이지, 표기법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표기법으로서의 한글은 우리말이 어떻게 변질되어도 그것을 표기할 수 있다 (그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사실 한글이 표기법으로서 우수한 점이다).
더구나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 때의 목적은 '누구나 읽고 쓰는 걸 쉽게 하기 위해서'이지 '우리의 전통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전통 문화인 한자쓰기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신하들로부터 무수한 반대를 받지 않았나? 전통 문화를 보존하는 것은 보존하는 것이고 그걸 한글이나 세종대왕하고 연결짓지 말라.
외래어
전통적으로 전해오던 어휘만을 고수해서는 빠른 시대 흐름에 절대 따라갈 수가 없다. 따라서 어휘 확장의 필요성이 있을 때, 모든 언어들은 신조어를 작성하거나, 혹은 음만 따서 표기하는 것, 이렇게 두가지 중 한 방법을 취하게 된다. 신조어로 작성된 예는 일본어의 정치, 경제 등이 있겠고, 우리말로는 동아리, 누리꾼, 새내기 등이 있겠다. 음만 따서 표기하는 법을 통상 '외래어'라고 부르는데, 앞의 예를 외래어로 표기해보면 서클, 네티즌, 뉴비(이건 사실 외래어로 지정되지 않음) 등이 되겠다.
영어는 외국에서 유래한 단어를 거리낌없이 받아들이는 언어로써, 그에 따라 어휘량이 매우 풍부한 특성을 지니게 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세계 공통어로 사용되는 데 불편함이 없게 되었다 (공통어로 쓰이려면 옮기지 못하는 표현이 거의 없어야 한다). American Heritage Dictionary는 hangul, kimchi, nippon, sumo 정도는 가볍게 포함하고 계시다.
결국 외래어를 받아들임으로써 빠르게 변하는 언어적 요구를 손쉽게 수용할 것인가, 아니면 신조어를 만드는 데 힘을 기울임으로써 우리말을 더욱 풍부하게 가꿀 것인가, 혹은 그냥 요구를 무시하고 쓰지 말도록 억누를 것인가.. 의 문제가 되겠다. 같은 한국어/한글을 사용하는 두 체제 가운데 남한은 외래어에 치중하고 북한은 신조어에 치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둘다 장단점이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특성상 지식의 전파가 워낙 빠르고 우리말 사용법을 관장하는 국립국어원이 힘도 없고 예산도 없으니 신조어를 필요에 맞게 잘 만들어내어 전파하는 건 힘에 부칠 수밖에 없다.
외래어 표기
한글은 우수한 표음문자 특성상 우리나라 사람이 흔히 내는 거의 모든 발음을 잘 적을 수 있다 (외국식 발음 제외). 따라서 외국어도 우리식으로 발음하면 그걸 그대로 적음으로서 표기할 수 있다. 따라서 외래어로 받아들일 때 각자 발음해보고 그 발음대로 적는 경향이 있는데, 문제는 외국어의 발음과 한국어의 발음은 1:1 대응이 되지 않기 때문에 여러가지로 표기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적으로(아마 국립국어원에서?) 외국어 표기를 지정해놓고 있고, 우리말 어휘로 받아들이는 외래어에 대해서는 특히 관심을 기울여서 처리한다. (예전엔 뉴우요오크->지금은 뉴욕, 토우쿄우->도쿄)
문제는, 특정 단어가 근본적으로 외래어임을 모르는 사람들이 해당 표기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자장면'이다.
자장면은 한자로 작장면(炸醬麵)이라 쓰는데, 이를 중국어 표기로 적어보면 zhejiangmien이 된다. 이 발음은 [쩌지앙미엔] 내지는 [저지앙미엔]이 되는데, zh 발음이 [ㅈ]와 [ㅉ] 사이의 발음으로서, 영어에서의 th 발음이 그런 것처럼, 한글로는 어느쪽으로도 표현이 어렵다 (사실 e도 [ㅓ]로 표현하는 게 정확한가도 잘 모르겠다). 따라서 국어원에서는 외래어의 자음경화를 막기 위해 zh 발음으로 [ㅈ]을 선택했다고 한다. '선전(shenzhen)', '주룽지(zhurongji)에서 쓰이는 것과 같다. (다만, 정확하게 표기하자면 최대한 양보해서 '저장몐'이라고 하던지 아니면 한자음만을 따서 '작장면'이라고 해야했지 않는가 싶다. 즉, 자장면이라는 표기로는 외래어로 보기 힘들고, 이를 고유명사로 보았다면 굳이 널리 쓰이는 짜장면에서 바꾸지 않아도 되지 않았나..)
두번째 예는 일부 사람들이 약간 삐딱하게 딴지거는 것인데, '미국'이라는 단어의 한자표기이다. 이 한자 표기 논쟁은 흔히 '쌀나라' 논쟁으로 불리며 '일본은 米国으로 쓰는데 왜 우리나라는 美國으로 쓰는가 우리도 米國으로 부르자' 라며 현재 한자 표기가 기분나쁘다는 듯이 불평한다. 일단 '미국'이란 단어가 어원적으로 외래어임을 기억하기 바란다. '美國'을 사용하는 나라가 한 군데 더 있는데, (일본, 한국 빼면 당연히) 중국이다. 중국에서 '美國'은 meiguo로 [메이구어] 정도의 발음이 나며 당연히 이는 '아메리카'를 음차한 것이다 (본래 亞美里加; 米는 [미]의 발음이 나므로 美[메이]가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일본에서 '米国'은 본래 '亜米利加[아메리까]'로 음차한 것에서 한글자를 딴 것이다. (현재는 米의 발음이 예전과 달리 [메]가 아니라 [베이]로 바뀌어 米国을 [베이고꾸]로 읽는다. 일어의 美는 [비]로 발음나는 게 일반적인 것 같다.) 우리나라는 서방 나라들을 접할 때 한자표기를 하던 시절이니 어쨌거나 한자로 적어야만 했고, 따라서 이미 나라이름을 만들어 둔 중국이나 일본에서 빌려왔을 것이다. 다만 궁금한 점은 많은 나라 이름은 일본에서 가져왔는데 왜 미국은 유독 중국에서 가져왔는가하는 점이다. 네이버 지식인에서 좀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는데, 대충 설명하자면 미국은 꽤 초기에 우리나라가 접한 국가여서 중국의 영향을 받았고, 나머지 나라들은 이후에 일본에 의한 영향으로 명칭을 정한 게 아닌 가 싶다.
오해3. 영어는 발음과 글자가 1:1 대응이 안되어서 열등한 언어(혹은 표기법)이고
우리말/글은 1:1 대응이 잘 되니 우수한 언어(혹은 표기법)이다?
이건 영어의 문화적 특성을 잘 몰라서 하는 말이다. 영어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고전은 셰익스피어와 킹제임스성경이라 볼 수 있다. 16세기~17세기에 출판된 이 텍스트들이 새로운 세대들를 위한 학습교재로 활용되고 지속적으로 다른 출판문에서 인용되어왔기 때문에, 영어에서 사용되는 단어들은 표현들이 크게 변하지 않은 채로 유지되어 왔다. 여기서 '표현'이란 단어의 철자 자체를 포함한다.
하지만, 철자는 유지시켜도 발음이 변하는 것은 막을 수 없다. 즉, 같은 단어라도 지방에 따라 시대에 따라 다르게 읽기 마련이고, 이것이 지속되면 철자와 발음은 점차 거리를 넓히게 된다. 철자가 실제 발음과 달라졌을 때 철자를 고치는 것은 널리 읽히는 고전이 있는 환경에선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이런 상황이 몇백년쯤 진행되면 많은 단어들은 온갖 방식으로 발음되는 실제 발음을 거의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철자를 가진 형태가 될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떠한가? 일단, 한글은 훌륭한 표음문자라는 그 자랑스런 위세 덕분인지, 발음이 표기와 유리될 때마다 표기법(이름하여 맞춤법)을 통째로 뜯어 고친다. 이런 연유로 최근에는 거의 10년마다 한번씩 표기법을 개정하고 있다. 즉, 항상 '표기=발음'이 되도록 사전을 주기적으로 갱신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해서 바뀐 표기가 내가 짧은 30년 인생을 살아오면서도 수도 없이 많고, 그중 유명한 것들만 들어도 '사글세','강낭콩','-습니다' 등이 있겠다. 이렇게 잦은 '표준어 개정'이 가능한 것은 첫째로는 '한글의 훌륭한 표음문자설'이 있겠고, 둘째로는 깊은 역사의 고전이 없는 것이고, 셋째로는 책의 재출판이 매우 손쉬워졌다는 점 등을 들 수 있겠다. 즉, 한글은 일제강점기 즈음해서나 널리 쓰이게 되었기 때문에 (그나마 한글 전용은 해방 이후에도 한참 후), 표기가 발음과 유리된채로 고착화되는 일이 일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표기를 항상 발음과 같게 유지하는 것은 분명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이로운 방법일 것이다. 복잡한 철자를 익히지 않아도 누구나 말하는 대로 쓰고 쓰인 걸 바로 읽고 이해할 수 있으니.. 그러나 이는 고전 문학을 존재할 수 없게 하는 단점이 있다. 10년만 지나도 맞춤법이 조금씩 바뀌는 세상이니, 100년쯤 지나면 아마도 현재 읽히는 책들은 일반인들은 읽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훈민정음 해례본(이건 좀 오래됐다만)을 거의 읽고 이해할 수 없듯이. 또한 10년이라는 주기는 너무 빨라서, 이미 학교를 떠난 중장년 층으로서는 수도 없이 바뀌는 맞춤법을 미처 따라갈 수 없게 한다. (덕분에 요샌 흔히들 어른들이 '-읍니다'를 쓰는 것을 보고 청소년들이 맞춤법도 틀린다며 비웃는 웃지못할 일이 생긴다)
글의 결론은?
언어 및 표기법에는 장단점이 있으니 너무 우리걸 국수주의적으로 과대평가하지 말자는 것.
그리고 한글이 우수한 건 맞는데, 한국어가 우수하진 않으므로, 솔직히 맞춤법이 이렇게 자주 개정되지 않도록 단어들을 제대로 발음하도록 교육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글의 우수한 특성이 오히려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으니..
@ 원래 글 서너개로 쓸 내용인데 하나로 붙여 쓰다보니 너무 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