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성: 착한 아이 vs 반항아

생각 | 2008/10/15 00:08 | monomask
어머니는 나를 어릴 때부터 '착하다'라고 평했다.
대체로 조용하고 책을 좋아하는 성격에 부모님 속을 썩여 본 적도 없고
부모님 명을 거역해본 적도 별로 없고 반항심도 없는 그런 무난한 아이.
용돈을 올려달라거나 무언가를 사 달라고 크게 떼를 써본 기억도 거의 없는..

그러나 내가 나중에 커서 어머니와 어떤 대화를 하다가 말씀드린건데,
'나는 착했던 게 아녜요. 합리적이었던 거지. 수긍이 가니까 어른들이 말하는 대로 하고 그랬던 거지, 납득하지 못하는 일이면 그렇지 못한다고요.'
나는 그 순간 착한 심성보다는 합리적인 이성으로 평가받기를 원했고, 
돌이켜보면 자평한 대로 어릴 때도 이성적인 쪽이 발달한 편이었다.

사실 나는 어릴 때부터 '아.. 나는 얼마나 위선적인가.'하는 따위의 생각을 자주 하며 지내는 이상한 아이였다. (물론 직접 말한 적은 없다.) 여러가지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었는데, 감성적인 부분이 이성적인 부분과 충돌하는 일이 많았다. 그래도 겉으로 드러나는 거야 말 그대로 착한 아이일 뿐이지.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니까. '착한 아이'의 반대가 뭘까. '반항아'인가? 그렇다면 착한 아이에 가깝다는 게 맞겠다.

문제(?)를 일으킨 일이 한번 있긴 한데 부모님은 모르신다.
중학교 수학선생님한테 겨우 한대 맞고 소극적 수업거부를 한 일이다.

자세한 건.


이 사소하지만 오래 지속된 사건은 약간 무심한 B형 타입의 나에게 당일을 제외하고는 (그기간에조차) 별로 감성적인 영향을 주지 못했으나, 몇년이 지나고서도 문득문득 생각이 나서 '아 내가 왜그랬을까.. 선생님은 왜그랬을까..'하고 생각하곤 했다. 결국 합리적인 대우(해명/설명)를 원했던 시작이 서로 소득없는 대치를 지속하는 불합리한 상황을 만들어낸 모순적인 일이 벌어진 것이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선생님에게 '착한 아이'도 아니고 '반항아'도 아닌 '다루기 어려운 아이'였을 것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착한 아이란 '상대방에게 무조건 순종하는 유약한 자, 혹은 문제를 깨닫지 못하는 생각 없는 자'일지도 모른다. 또한 반항아는 '주어진 불합리성을 견디지 못하는 철학자'일 수도 있다. 내가 반항아로도 가지 않았고 착한아이로도 돌아가지 못했던 것은 더이상의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둘다 더이상 상황을 악화시키기도 원하지 않았고 좋게 해결하려는 의지도 없었다. 시작은 합리성이었지만 나는 사태 해결의 의지가 그리 크지 않았기에 내가 궁극적으로 원했던 합리적 상태로 들어가지 못했다.


합리성에는 세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적극적 합리성, 소극적 합리성, 무례한 합리성.
각각은 개혁가, 투덜이, 반항아(이단아)를 만들어 낸다.

훌륭한 리더는 두말할 것 없이 적극적인 합리성을 지닌다. 그는 불합리성을 간파하고 타파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며 주변 사람들을 잘 끌어들이기까지 한다. 사람들을 이성적으로뿐 아니라 감성적으로도 설득할 수 있는 타입이다. (당연히도) 흔히 보기는 어렵다.

불합리성과 합리성을 구분할 줄 알지만 행동하지 않는 사람은 투덜이로 남게 마련이다. 아무 사회적 영향을 주지 못하며 알면서 행동하지 않는다는 그 자체로 모순적이라 볼 수 있다. 사실.. 대부분 사람들은 잘해봐야 여기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가장 골치 아픈 경우가 마지막 경우인데, 분명히 옳은 말을 하는 것 같은데 동조해줄 수가 없다. 흔히 '계몽지식인', '진보지식인'들이 이 부류에 속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주장 자체가 비합리적인 '자칭진보'들은 빼겠다). 오히려 역지지층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반대방향으로 밀어내기 일쑤다. 원래 그들은 첫째 부류에 속해야 하는 사람들인데..


이렇게 얘기를 하고 보니 합리성이 착한아이와 반항아를 구분짓는 건 아닌 거 같다. 불합리한 상황에 대해, 적극적이고 잘 대처하면 합리적인 착한아이가 될 수도 있고 무례하게 대처하면 합리적이어도 반항아가 될 수도 있겠다.

나는 앞서 예를 든 수업거부 사태에서 투덜이였던 거다. 다른 몇몇 상황에선 적극적 합리성을 보이려고 하는 경우도 있고 소극적 합리성으로 남아 있을 때도 있다. 최소한 무례하지는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잘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지역태그 : 대한민국>부산
  1. 궁시렁 2008/10/19 14:55 답글수정삭제

    수학선생님의 기대치가 다른 학생들에게 바라는 것보다 훨씬 높았군요. 오묘한 이유로 상황이 이해됩니다. ㅎㅎ

    흠.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요.
    중학교 1학년때 사회 시험을 보고 매 문제마다 틀린 사람을 앞으로 나오라고 해서 맨 마지막에 나온 사람은 손바닥을 맞는, 뭐 그런 식이었어요. 제가 틀린 문제 차례가 되어 저도 후다닥 튀어나갔지만, 선생님은 (아마도 음흉한 미소를(응?) 지으며) 절 보시더니 '넌 맨 뒤로 가'라고 하더군요. 저는 '선생님 그런 법이 어딨어요'라는 표정을 짓고는, (무조건 순종하는 유약한 부류에 속하기 때문인지) 맨 뒤로 가서, 한 대 맞고, 아마도 몇 초 동안 속으로 궁시렁대고는 말았습니다.

    • monomask 2008/10/20 17:14 수정삭제

      ^^ 선생님이야 물론 말씀하신대로 '더 잘하라'는 생각으로 그러셨겠지만 저는 수학에 흥미를 잃을 뻔했답니다. 어쨌든 어린 마음에 사과나 받아보자고 시작한 작은 반항이 뜻하지 않게 수업거부로 이어져서 저도 꽤나 당황했습니다만..

      그나마 제 경우는 따로 규칙 같은 게 없었지만 궁시렁님은 규칙이 있는데도 선생님이 임의로 규칙을 바꾸신 거니까 더 억울하셨겠어요 ^^a

  2. 1월의가면 2008/11/10 03:25 답글수정삭제

    전 쓸데없이 반항아 기질이 나중에 생겨
    여러모로 갖은 수난을 다겪네요
    이번주에는 지나가는 선생과 체벌문제로 싸워 경찰까지 갖다오고
    담임과 시험시간갖고 한바탕 또 하고

    그래도 차라리 무례한게 잘못된것을 방치하거나 틀린것을 틀리다고
    말하지못하는것보다는 나은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심적인 대가는 또 크게느껴지네요^^

    • monomask 2008/11/10 04:00 수정삭제

      흐흐 잘못된 걸 못참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수능이 얼마 안남았으니 감정적으로 크게 흔들릴만한 일은 벌이시지 않는 게 좋겠죠 ^^

      뭐.. 크게 흔들리지 않는 스타일이시라면야 상관없겠습니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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